소설은 자주 읽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굉장히 재밌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결국 타고난 머리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은, 환경은 한 사람의 가치를 바꿔놓지 않고 또한 내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도 안다.
환경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가난해서 학원을 다니지 못 하는 학생들에게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인터넷에 다 있어!"
라고 하는 것.
환경 바꾸지 못 한다고 해도 비난할 수 없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에게 "넌 충분히 환경을 바꿀 수 있잖아!"
라고 하는 것.
올바르지 않다.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 있고, 바뀔 수 있는 계기가 없을 수도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내가 그 사람을 바꿔줄 수 있는 계기이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
뭐 사설은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책리뷰를 해볼까 한다.
이 책은 남아프리아 공화국에서 똥 푸는 일을 하던 여주인공 놈베코가
거기에서도 명석함을 보이며 그 명석함을 이용하여 (어쩌다보니) 핵무기까지 가지게 되는 이야기다.
이런 내용이 책 소개할 때 써있었는데 '대체 어떻게하면 핵무기까지 가는거지?'라는 궁금증에 휩싸였다.
핵무기를 가지게 될 때까지의 과정도 굉장히 재밌으니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야기 진행도 재밌지만, 챕터별로 (나는 듣지 못 한) 유명한 말들이 나오는데, 그 문구들도 굉장히 감명깊다.
나는 핵무기를 가진 이후의 놈베코의 말들이 마음에 들어서 후반부만 가지고 왔다.
남아프리아공화국에서 온 놈베코는 스웨덴으로 오게 되는데,
놈베코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국민의 대다수가 투표권이 없는 나라를 떠나와보니, 이 나라는 투표권을 가져서는 안 될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오늘날 민주주의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구다.
이건 각각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어떤 사람이 '투표권을 가져서는 안 될 사람'인지에 대한 정의가 다를 것이다.
학력으로도 구분할 수 없다 (놈베코와 홀예르 2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렇다고 그 사람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지 구분할 수 없다 (치매가 아닌 이상. '올바름'을 어떻게 정의한단 말인가)
이 문제가 해결되는 날이 있을까 싶지만, 언제나 의문과 해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다.
놈베코는 홀예르 2를 만나게 되는데, 놈베코 못지 않은 기이한 운명을 가진 남자다.
쌍둥이 홀예르 1은 머저리(책의 표현을 빌리자면)인데,
약간 사리분별이 어려운 사람이다.
일란성 쌍둥이에다가 동일한 환경에 있었지만, 서로 받아들이는게 달랐다.
그것이 둘의 차이를 만들었다 (물론 머리도 달랐다. 역시 유전자가 같다고 해서 똑같이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놈베코는 홀예르 2와, 셀레스티네(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주 멍청한, 홀예르 1과 잘 어울리는')는 홀예르 1과 사귀게 된다.
둘이 생김새가 같으니까 주변의 질문을 받게 되는데, 그 질문에 셀레스티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셀레스티네는 먼저 홀예르와 홀예르의 차이를 설명했다. 둘 중 한 사람은 자신의 기가 막힌 남친이며, 다른 하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남자란다. 이 말을 등 뒤로 들은 놈베코는 셀레스티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자신은 너무 행복하다. 앞으로 두 남자를 바꾸자고 자길 괴롭힐 일은 없지 않겠느냐, 라고 대꾸했다.
짚신도 제 짝이 있다구!
비슷한 수준이어야 그 사람을 이해하고 우러러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엄청난 범인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과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바운더리 안에 들어올까?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셀레스티네가 보기에는 홀예르 2는 이상주의자에 현실에 불평을 하지 않는 머리만 좋은 사람(남자도 아니고)이다.
반면에 홀예르 1은 자신과 가치관이 일치한다.
가치관!!!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놈베코는 똑똑하고 본인을 이해하고 남자도 그와 같은 수준인 것을 원한다.
홀예르 1은 해당사항이 없다.
홀예르 1 커플은 항상 시위(어떤 시위이든 상관없다. 체제에 반하는 것이라면)에 참여하는데
그 시위단에게조차 배척받는다.
하지만 어느날 어떤 모임에 갔는데
그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사귀게 되어 너무도 행복했다......(중략).....홀예르 1과 셀레스티네는 마침내 그들의 가족을 찾은 것이다.
자신들의 이야기에 경청해주고, 우러러보는 집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이 느끼는 만족감!
그들은 이게 바로 그들의 '그림자'가 아니었을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참고]
뭔가 되게....아련했다.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홀예르 1 커플은 충격적인 모습과 마주치게 된다.
그는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의 공화주의적 신념을 키워 온 것은 화려한 제복과 훈장들과 외알 안경과 은제 지팡이로 꾸며진 구스타브 5세의 이미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서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형제와 그 자신이 다트를 던지던 초상화였다. 그는 이 이미지를 셀레스티네에게도 전했고, 그녀도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았다.....(중략).....하지만 이것은 지금 그들의 목전에서 산산조각 나버린 진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본인들의 진리가 깨져버리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들의 상실감은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삶의 이유였고 방향이었고 미래였다.
마치 기독교인들한테 신이 없다고 (명확한, 반박할 수 없는, 믿음으로도 어쩔 수 없는) 증거를 주면 느꼈을 그런 감정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진리가 깨어진 와중에도
형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지지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홀예르 1 커플은 본인들의 가치관을 인정받는게 그들의 그림자였다면,
홀예르 2 커플은 전혀 달랐다.
그들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상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일들만을 했다. 홀예르 2와 놈베코는 우편함에 들어온 공과금 고지서를 발견할 때마다 너무도 행복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존재하는 이들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홀예르 2 커플은 신분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 나설 수 없었으며, 혹시나 경찰에게 발각될까봐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그들이 신분을 얻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을 공문서로 인정받았을 때!!
이민자들이 시민권을 받았을 때보다 더 기쁨이 크지 않았을까 한다.
'공식적인 존재'가 그들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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