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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여행의 이유_김영하

일상을 풍부하게/책리뷰

by 약먹은찐계란 2020. 2. 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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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문적인 리뷰로 아니고 전체적인 책 리뷰도 아니다.

그냥 나의 생각을 남기고 싶어서 남기는 글이다.

 

1월 말 경에 밀리의 서재 정기 구독 무료 체험판을 시작했다.

김영하 작가의 책을 볼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바로 읽기를 시작했다. 

벌써 꽤나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지금 읽고 있는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도 굉장히 재미있어서 독후감을 쓰려고 한다.

 

일단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에 대해서 쓰도록 하겠다.

 

이 책의 전체적인 감상평은 다음과 같다.

'작가들은 이런 다양한 생각을 평소에 하며 사는구나. 이런 다양한 표현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생각들을 일일히 기록하시며 지내실까? 하나의 일로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구나.

생산적인 다양한 생각을 이렇게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읽으면서 표시한 인용문, 메모, 북마크를 기준으로 작성했다.

 

일종의 카프카적 상황....(중략)....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에는 성을 찾아가는 건축가 K가 등장한다. 그는 거듭하여 묻는다. 성은 어디에 있냐고, 사람들은 여기 또는 저기를 가리키는데, 때로 어떤 사람들은 이미 그가 성에 들어와있다고 말한다.

김영하 작가님이 알쓸신잡을 촬영하면서 그리고 그 촬영본을 보면서 느꼈던 것을 이야기하며 언급된 말이다. 

전체를 알 수 없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라고 얘기한다.

전체를 통제할 것인가 아니면 우연에 맡길 것인가. 

물론 김영하 작가님은 중간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__^

계속해서 같은 내용을 이어가자면

르네상스 이전의 인간들이 지배하던 태도, 다시 말해 절대적 믿음으로 회귀하는 것이다....(중략).....르네상스 이후에 인류가 선택해온 길이다. 합리성을 믿고, 과학적 진보를 통해 세계와 인간을 변화시키고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 바로 근대성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작가님은 무엇을 선택했는가?

현재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이 말이 굉장히 와닿았다. 실제적으로 내가 살아가는 가치관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도 여행이라고 표현하셨듯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찌보면 나는 "절대적인 믿음"에 나를 맡기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나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과정'을 맡기진 않는다.

과정까지 맡겨버리면 운명론자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세부에 함몰되는 위험

이것도 마찬가지로 알쓸신잡 내용을 이야기하며 나온 문구 중 하나이다. 

세부에 함몰되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

일단 모든 일이라는 것은 전체적인 '그림'이 있을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내가 그리는 전체적인 '그림'이 있다.

하지만 그에 수반되는 스케치, 물감 종류, 붓 종류, 색, 구도 등은 그리는 상황에 따라 바뀌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그림'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만 정확하게 전달하면 된다.

그래서 세부가 바뀌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원권'.....(중략).....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그림자가 절실하다. 환대받지 못하는 곳에서 적절한 장소도 부여받지 못하는 인간들의 운명은 비참하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언급하며 나온 이야기이다.

감동받아서 찾아서 읽어봤는데 썩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작가님이 이야기 한 내용이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권력인가?돈인가?

언급한 소설에서는 '그림자'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인공은 권력과 돈을 다 가지고 있지만 결국에는 '그림자'가 없어서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해 결혼도 못하고 인간에 속하지 못하게 된다.

나에게 이 '그림자'는 무엇인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의 '그림자'는 무엇일까?

지금 읽고 있는 책인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의 남주인공은 처음에는 '신분'이었던 듯 하다.

그건 현재 우리 사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림자'는 '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빛나게 해주는. 그로 인해 삶이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닌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행은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도 소설과 닮았다. 설렘과 흥분 속에서 낯선 세계로 들어가고, 그 세계를 천천히 알아가다가, 원래 출발했던 지점으로 안전하게 돌아온다. 독자와 여행자 모두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장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일상으로 복귀할 때가 되어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님은 여행을 굉장히 많이 다닌다고 하신다. 

나도 1년에 국외로 2회 이상, 국내로 2회 이상 다닌다.

'끝'이 있다는 점이 오히려 안정적이라는 것에서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이민과 여행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여행 막바지에 들어서야 나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것에서 굉장한 공감을 했다.

여행할 때에는 그저 재밌다.

여러 곳을 다녀보고 싶고 현지인처럼 있어보고 싶고

원래 있던 곳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 끝날 즈음이 되면 집이 생각나고 돌아가고싶어지기도 했다가

또 계속 여기서 머무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돌아가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 것인가 다짐을 하기도 한다.

 

그토록 길고 고통스러웠던 여행의 목적은 고작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었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언급하여 나온 문구

(읽으면서 오디세우스는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귀환의 원점은 겨우 찾았지만 그 자신이 이미 변화했기 때문에 원점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유학갔던 마사이족 청년이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나온 문구.

유학다녀온 마사이족 청년은 우리의 기준으로는 똑똑해졌지만, 

마사이족으로 살아가는 필수적인 재능인 땅, 공기에 실린 정보로 집을 찾아내는 능력을 잃어버린 청년.

 

바뀌겠다고 다짐하지만 나의 중심은 잘 변하지 않는다.

나의 중심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까 여행을 가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게 아닐까.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귀환의 원점'은 나의 변화로 인해 달라져있을 수 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김영하 작가님의 통찰력 있는 글을 읽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아래 문구는 여행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너무 감동적이어서 가지고 왔다.

인간보다 수명이 훨씬 짧은 개와 고양이를 반려라고 생각하면 너무 애닯다. 무슨 반려들이 이토록 자주, 먼저 떠나는가

난 그래서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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